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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쿠르와 함께한 20년, 그의 거친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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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 Risk High Glory]

# 김지호 파쿠르 제너레이션즈코리아 대표


1만 시간의 법칙을 아시는가. 하루 3시간씩만 잡아도 10년이다. 그런데 그 위험하다는 파쿠르에 20년 청춘을 꼬박 투신한 사나이가 있다. 10대 후반에 시작해 어느덧 40대를 바라보는 그의 익스트림 라이프를 듣는 데는 4시간의 인터뷰로도 턱없이 부족했다. 대한체조협회 파쿠르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지호 파쿠르 제너레이션즈코리아 대표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김지호 파쿠르 제너레이션즈코리아 대표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김 대표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말썽꾸러기였지만,  다소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 크게 활약(?)하지 못하고 적어도 겉보기엔 점잖은 청소년으로 성장했다.그러던 그를 한순간에 바꿔놓은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손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 ‘야마카시’였다. 생소하던 파쿠르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 액션영화는 당시 한국에도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왔고, 전국의 많은 학생들은 담을 뛰어 넘고 맨땅에 몸을 날려댔다.. 그 중 하나였던 김 대표도 학교 구령대로 달려가 난간을 점프해 넘어가서 매달리는 ‘턴 볼트(turn-vault)’를 시도했다.

"영화 속 장면을 따라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습니다.  막상 도전하기 직전에는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지만,눈을 질끈 감고 시도하니 어느새 성공했더라고요. 그때 미친듯이 뛰던 심장박동이 바로 조금 전 일처럼 아직도 생생합니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점프해 매달리는 '턴 볼트' 동작.


난생 처음 스스로 살아있음을 자각한,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그 순간을 기점으로 파쿠르는 그의 인생에 그렇게 눌러 앉았다. 고3이 되고 수험생활에 매진하면서도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동네 아파트 단지를 밤새도록 누볐다. 영화에서 본 갖가지 동작을 연구하고 시도하며 나름의 수련을 해 나갔다. 

몸을 쓰기 위해 깊은 생각과 고민에 빠지곤 하다 보니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도 점차 늘어갔다.그에게 파쿠르는 단순한 취미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의 전부가 되어 가기 시작했다.성인이 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의 파쿠르 인생은날개를 달았다. 넓은 공간에 각종 구조물이 가득한 캠퍼스는 그야말로 완벽한 놀이터였다.뜻이 맞는 이들과 뭉쳐 학교 곳곳을 신나게 누비고 다녔고,온라인에서 결성된 커뮤니티에도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파쿠르를 깊게 조명한  K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의 모교이자 놀이터였던 숭실대학교.



파쿠르의 발상지, 프랑스 에브리로

하이라이트는 2008년이었다. 김 대표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탈탈 털어 파쿠르의 발상지로 알려진 프랑스 에브리로 날아갔다. 성지순례의 마음으로 방문한 그곳에서 전 세계 수많은 파쿠르 수련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일생의 목표였던 ‘맨파워 갭’에 도전했다.  파쿠르의 창시자 데이비드 벨이 영화 ‘13구역’에서 선보였던,높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점프해 건너가는 위험천만한 기술이었다.

“5층 건물 옥상에 서서 1시간을 넘게 고민했습니다. 이 도전을 위해 수백 수천 번 점프를 하고 낙법을 연습해왔지만,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엄청난 긴장감이 저를 짓눌렀죠. 머릿속은 고요했지만 은 아드레날린으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발을 딛을 곳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몸을 날렸고, 저는 어떻게 낙법을 했는지도 모르게 반대편 옥상에 착지하고 있었습니다.”

파쿠르의 성지에서 맨파워 갭을 성공한 최초의 아시아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성취보다도 다치거나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안도감이 먼저 그를 감쌌다. 한국에서 파쿠르 를 하면서 더 높이 더 멀리 더 위험한 동작만을 추구하며 경쟁에 만 몰두했던 그는,역설적이게도 경쟁 없이 성장하는 방법을 처음 으로배웠다. 그가 이때의 도전 경험을 진정 파쿠르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었던 순간으로 기억하는 이유다.

아시아 최초의 '맨파워 갭' 성공, 직접 확인하시라.


대단한 성취를 이루고 한국에 돌아왔음에도 이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오랜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 찾아드는 공 허함과 무기력함도 상당했다. 그는 이때 다시금 깨달았다. 도전은 분명 위대한 것이지만, 화려하고 스릴 넘치는 퍼포먼스가 파쿠르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이후 김 대표는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파쿠르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온라인 카페에서 커뮤니티를 운영하 며 파쿠르의 확산과 정착을 위해 노력해 나갔다 파쿠르 전용 신발 을 만드는 해외 브랜드의 한국 총판을 맡아 제품을 유통하고, 이 제품들을 발판으로 만든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으로 창업경진대 회 에 나가 수상하기도 했다 사회적기업의 형태로 파쿠르를 활용해 보고자 공공기관과 손을 잡기도 했다.그렇지만 이 모든 노력의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교육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었다.

“정말 순진했던 것 같아요. 더 잘하고 멋지게 하고 유명해지면 파쿠르의 저변이 확대될 것이라 생각했는데,그렇게 할수록 사람들은 파쿠르를 위험한 스포츠로만 인식하더라고요. 축구나 농구를 하다가 다치면 당연히 개인의 실수나 잘못으로 생각하면서 파쿠르는 종목 자체가 위험하다고 여기니까요.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파쿠르의 본질을 알릴 수 있겠다 판단했습니다.”

노력을 증명하는 그의 손.


국제공인 파쿠르 코치가 되다

그렇게 그는 2013년부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미국 보스턴, 영국 런던을 돌며 국제 파쿠르 지도자 레벨 1・2・3과정을 차례로 수 료하고 라이센스를 취득함으로써 아시아 최초 의 국제공인 파쿠르  코치가 됐다. 곧이어 글로벌 최초의 파쿠르 교육기관인 파쿠르 제너레이션즈의 문을 수차례 두드린 끝에국내 법인 설립까지 이뤄냈다. 설립 초기에는 배우러 오는 이들이 없어 거의 혼자 수련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입문하는 이들이 차차 늘면서 입소문이나고 코로나19  종식과 맞물리며 현재는 주말에만 수십 명씩 수련하러 오는 규모로 성장했다. 생각보다 안전하고 깊이 있는 스포츠라는 인식도 함께 갖춰지기 시작했다. 때맞춰 파쿠르가 제도권 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하면서 김대표의 활동 영역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국제체조연맹(FIG)은 2018년 파쿠르를 8번째 체조 종목으로 공식 편입했고, 국제올림픽 위원회(IOC)는 내년 파리 유스올림픽에 파쿠르를 시범종목으로 채택했다.그는 대한 체조 협회 파쿠르위원장을 역임하게 되면서 다가오는 파쿠르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에 대비해 선수 발굴과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파쿠르를 배우는 이들이 많아져야 오해와 진실이 밝혀진다고 믿는다.


물론 파쿠르 내부적으로 상업화 및 경쟁요소 도입 여부를 두고 첨예한 의견 충돌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장애물을 넘고 묘기를 부리며 타인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수련을 중시하는 본질 때문이다.김 대표 또한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보다 넓은시야를 통해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보려 한다.

“상업화와 경쟁요소가 파쿠르의 근본 철학을 위협할 수 있다 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을 거부하고 순수성만 추구 하는 길도 100% 옳은 방향일지 의문입니다. 그 양극단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은 분명 존재하고 그걸 꼭 찾아낼 겁니다. 언젠가 저변 이 넓어지고 참여자가 많아지면 고전적인 파쿠르와 스포츠로서 의 파쿠르로 분화할 수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아찔하고 위험한 것이 파쿠르의 전부는 아니다.


20년간 파쿠르와 함께 해오는 동안 김 대표는 골절이나 인대가 늘 어나는 등의심각한 부상은 한 번도 겪은 적이없다. 가벼운 찰과상과 타박상 정도가 전부다.그는 부단한 정신적 수련이 그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높은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위험한 장애물을 넘어설적이면 여전히 두렵고 떨리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다.극복하지 못할 것은 세상에 없다고 믿는 그의 눈에 파쿠르의 정착과 발전이라는 쉽지 않을 도전이 이제 막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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