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Risk High Glory]
#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의 선구자 이남기
남들이 외면하는 불편한 길을 나홀로 고집하는 별종 같은 사람들이 가끔 있다. 깨끗하게 쭉 뻗은 평탄한 길보다 가파르고 험한 길로 스스로를 내몰며 정체성을 확인하고 만족을 좇는다. 자신이 가는 곳이 곧 길이라 굳게 믿는, 인생 그 자체가 익스트림이라 이를 만한 오프로드 모터사이클 팀 코리아 이남기(43) 감독도 그런 이들 중 하나다.
[이남기 감독]
1996년, 그러니까 그가 18살 때다. 어느 날 밤 TV에서 스포츠뉴스를 보던 중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화면에서는 파리-다카르 랠리의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굉음을 내며 달리는 차들 뒤로 멋지게 뛰어오르는 바이크에 일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바람을 가르는 게 전부였던 고등학생에게 오프로드 바이크는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는 아버지를 조르고 조른 끝에 효성 스즈키 매장으로 달려가 RX125를 덜컥 구입했다. 오토바이를 타겠다는 고등학생 아들에게 그린라이트를 선뜻 내주는 부모는 드물고 아버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식 이기는 부모는 드물고 아버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건 너무나 당연했죠. 그래서 더 착실한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학생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려 노력하고, 이런 저런 자격증도 따면서 말이에요. 돌이켜보면 만약 그때 반대가 컸더라도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1996년 다카르 랠리]
이 감독의 오프로드 인생은 그가 성인이 되고 군대를 다녀온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가 선택한 건 오프로드 바이크 세부 종목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되는 ‘하드코어 엔듀로’였다. 2006년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대회에 처음 출전해 자신의 속한 클래스에서 10위를 기록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첫 도전의 결과가 좋게 나오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여러 동호회를 드나들며 정보를 얻고 배우면서 틈틈이 국내 대회에도 출전해 실력을 키웠다. 2006년 원주시장배 엔듀로 우승과 2008년 엔듀로 챔피언십 태백 클래스 1위 등 잇따른 수상으로 이름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드코어 엔듀로의 가장 큰 매력은 끝없는 아드레날린 분비인 것 같아요. 최고 220의 심박 수가 4시간이 넘는 레이스 동안 계속되는데, 몸이 바이크와 한몸이 되는 짜릿함에 다다르게 됩니다. 러너스 하이와 비슷하지만 기계와 휴먼이 연결된다는 점이 특별하죠.”
[오프로드 바이크 하드코어 엔듀로]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알아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견디기 어려운 갈증도 함께 커졌다. 더 넓은 무대에 대한 동경부터 규모가 커지지 못하고 있는 국내 오프로드 바이크 분야, 그리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대중의 차가운 시선 등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부상을 입거나 성장세가 더딘 이들을 위해 직접 아카데미를 열고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또한 한계가 뚜렷했다. 오프로드 바이크가 더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즐기는 스포츠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저변 확대가 필요한 많은 익스트림 스포츠들이 그렇듯 선구자적인 존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부터 끊임없이 도전해서 이 분야의 ‘스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죠.”
결심은 빠른 실행으로 이어졌다. 그는 2015년 6월 오스트리아에 이어 7월 루마니아까지 해외 메이저 대회마다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드코어 엔듀로의 꽃이라 불리는 오스트리아 에르츠버그와 루마니아 로마니악스 출전은 아시아인 최초의 도전이라는 점에서 현지에서 큰 이슈가 됐다. 특히 로마니악스에서는 계곡으로 추락하며 부상을 입었음에도 아이언 클래스 TOP10에 진입하는 기적을 썼다.
[루마니아 로마니아 내셔널 대회 우승]
2017년에는 SUV 차량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포르투갈까지 유라시아 횡단을 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만km에 육박하는 거리를 열흘 남짓한 시간에 주파한 뒤 곧바로 대회에 출전했는데, 오랜 이동으로 인한 체력 소모를 극복하고 로마니악스 2위, 로마니아 내셔널 대회 우승이라는 엄청난 쾌거를 이뤄냈다.
“사실 성적보다도 그 먼 길을 혼자 헤쳐 나가 대회에 참가했다는 자체로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유럽 선수들의 환호를 받던 그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진정으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길을 내가 가고 있구나 하는 자부심도 들었고요.”
선수로서 그에게 남은 마지막 목표는 고등학생 시절 그를 오프로드로 이끈 다카르 랠리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휘감으면서 그의 꿈도 무산됐다.
안타까움이 컸지만 그는 좌절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지도자로의 변신이었다. 국내 하드코어 엔듀로 선수들을 발굴해 육성하고 스스로 감독 겸 매니저를 맡았다. ‘엔듀로 팀 코리아’의 탄생이었다. 훈련을 진두지휘하면서 선수들을 알리는 영상도 제작했다. 최근에는 과거 유럽에서 친분이 쌓인 세계적인 선수들을 국내로 초청해 함께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감독과 대표팀의 역할을 넘어 오프로드 바이크의 대중화가 최우선 목표입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돼야 큰 대회도 만들어지고 좋은 선수들도 나올 수 있을테니까요. 무엇보다도 앞으로 나오는 선수들은 과거의 저처럼 서포터와 후원사 없이 혼자 고생스럽게 운동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꿈은 오프로드 바이크 스포츠의 대중화다]
이 감독은 오는 6월 경기도 이천에 개장할 ‘엔듀로 파크’의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넓이 4000평 대지에 만들어지는 엔듀로 파크는 다양한 체험 라이딩 코스부터 바이크 및 장비를 위한 공간, 교육장 등으로 조성된다.
공간이 마련되면 지금껏 쌓아온 국내외 맨파워를 활용해 대회를 개최하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즐길 수 있도록 채워 넣을 콘텐츠도 고민 중이다.
그가 그토록 원하는 오프로드 바이크의 대중화가 극적으로 단기간에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끝없는 노력과 도전, 수시로 찾아올 좌절의 시간들이 먼저일 것이다. 어쩌면 그가 지금까지 바이크로 달렸던 길보다 앞으로 개척해 나가야 할 길이 더욱 험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도전의 끝이 어떤 엔딩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익스트림에 몸을 던진 그의 인생 2막은 이미 시작됐다.
[High Risk High Glory]
#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의 선구자 이남기
남들이 외면하는 불편한 길을 나홀로 고집하는 별종 같은 사람들이 가끔 있다. 깨끗하게 쭉 뻗은 평탄한 길보다 가파르고 험한 길로 스스로를 내몰며 정체성을 확인하고 만족을 좇는다. 자신이 가는 곳이 곧 길이라 굳게 믿는, 인생 그 자체가 익스트림이라 이를 만한 오프로드 모터사이클 팀 코리아 이남기(43) 감독도 그런 이들 중 하나다.
[이남기 감독]
1996년, 그러니까 그가 18살 때다. 어느 날 밤 TV에서 스포츠뉴스를 보던 중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화면에서는 파리-다카르 랠리의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굉음을 내며 달리는 차들 뒤로 멋지게 뛰어오르는 바이크에 일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바람을 가르는 게 전부였던 고등학생에게 오프로드 바이크는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는 아버지를 조르고 조른 끝에 효성 스즈키 매장으로 달려가 RX125를 덜컥 구입했다. 오토바이를 타겠다는 고등학생 아들에게 그린라이트를 선뜻 내주는 부모는 드물고 아버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식 이기는 부모는 드물고 아버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건 너무나 당연했죠. 그래서 더 착실한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학생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려 노력하고, 이런 저런 자격증도 따면서 말이에요. 돌이켜보면 만약 그때 반대가 컸더라도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1996년 다카르 랠리]
이 감독의 오프로드 인생은 그가 성인이 되고 군대를 다녀온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가 선택한 건 오프로드 바이크 세부 종목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되는 ‘하드코어 엔듀로’였다. 2006년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대회에 처음 출전해 자신의 속한 클래스에서 10위를 기록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첫 도전의 결과가 좋게 나오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여러 동호회를 드나들며 정보를 얻고 배우면서 틈틈이 국내 대회에도 출전해 실력을 키웠다. 2006년 원주시장배 엔듀로 우승과 2008년 엔듀로 챔피언십 태백 클래스 1위 등 잇따른 수상으로 이름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드코어 엔듀로의 가장 큰 매력은 끝없는 아드레날린 분비인 것 같아요. 최고 220의 심박 수가 4시간이 넘는 레이스 동안 계속되는데, 몸이 바이크와 한몸이 되는 짜릿함에 다다르게 됩니다. 러너스 하이와 비슷하지만 기계와 휴먼이 연결된다는 점이 특별하죠.”
[오프로드 바이크 하드코어 엔듀로]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알아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견디기 어려운 갈증도 함께 커졌다. 더 넓은 무대에 대한 동경부터 규모가 커지지 못하고 있는 국내 오프로드 바이크 분야, 그리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대중의 차가운 시선 등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부상을 입거나 성장세가 더딘 이들을 위해 직접 아카데미를 열고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또한 한계가 뚜렷했다. 오프로드 바이크가 더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즐기는 스포츠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저변 확대가 필요한 많은 익스트림 스포츠들이 그렇듯 선구자적인 존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부터 끊임없이 도전해서 이 분야의 ‘스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죠.”
결심은 빠른 실행으로 이어졌다. 그는 2015년 6월 오스트리아에 이어 7월 루마니아까지 해외 메이저 대회마다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드코어 엔듀로의 꽃이라 불리는 오스트리아 에르츠버그와 루마니아 로마니악스 출전은 아시아인 최초의 도전이라는 점에서 현지에서 큰 이슈가 됐다. 특히 로마니악스에서는 계곡으로 추락하며 부상을 입었음에도 아이언 클래스 TOP10에 진입하는 기적을 썼다.
[루마니아 로마니아 내셔널 대회 우승]
2017년에는 SUV 차량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포르투갈까지 유라시아 횡단을 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만km에 육박하는 거리를 열흘 남짓한 시간에 주파한 뒤 곧바로 대회에 출전했는데, 오랜 이동으로 인한 체력 소모를 극복하고 로마니악스 2위, 로마니아 내셔널 대회 우승이라는 엄청난 쾌거를 이뤄냈다.
“사실 성적보다도 그 먼 길을 혼자 헤쳐 나가 대회에 참가했다는 자체로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유럽 선수들의 환호를 받던 그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진정으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길을 내가 가고 있구나 하는 자부심도 들었고요.”
선수로서 그에게 남은 마지막 목표는 고등학생 시절 그를 오프로드로 이끈 다카르 랠리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휘감으면서 그의 꿈도 무산됐다.
안타까움이 컸지만 그는 좌절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지도자로의 변신이었다. 국내 하드코어 엔듀로 선수들을 발굴해 육성하고 스스로 감독 겸 매니저를 맡았다. ‘엔듀로 팀 코리아’의 탄생이었다. 훈련을 진두지휘하면서 선수들을 알리는 영상도 제작했다. 최근에는 과거 유럽에서 친분이 쌓인 세계적인 선수들을 국내로 초청해 함께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감독과 대표팀의 역할을 넘어 오프로드 바이크의 대중화가 최우선 목표입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돼야 큰 대회도 만들어지고 좋은 선수들도 나올 수 있을테니까요. 무엇보다도 앞으로 나오는 선수들은 과거의 저처럼 서포터와 후원사 없이 혼자 고생스럽게 운동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꿈은 오프로드 바이크 스포츠의 대중화다]
이 감독은 오는 6월 경기도 이천에 개장할 ‘엔듀로 파크’의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넓이 4000평 대지에 만들어지는 엔듀로 파크는 다양한 체험 라이딩 코스부터 바이크 및 장비를 위한 공간, 교육장 등으로 조성된다.
공간이 마련되면 지금껏 쌓아온 국내외 맨파워를 활용해 대회를 개최하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즐길 수 있도록 채워 넣을 콘텐츠도 고민 중이다.
그가 그토록 원하는 오프로드 바이크의 대중화가 극적으로 단기간에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끝없는 노력과 도전, 수시로 찾아올 좌절의 시간들이 먼저일 것이다. 어쩌면 그가 지금까지 바이크로 달렸던 길보다 앞으로 개척해 나가야 할 길이 더욱 험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도전의 끝이 어떤 엔딩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익스트림에 몸을 던진 그의 인생 2막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