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스크림]
# 폴 600미터(2022)
지상으로부터 600m 높이의 송전탑 위, 1평 남짓한 공간에 홀로 발을 딛고 서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더구나 태양빛이 뜨겁게 작렬하고 독수리 떼가 위협적으로 주변을 배회하는데 구조를 요청할 방법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면? 제아무리 암벽 등반이나 산악 지형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정신줄을 온전하게 붙들고 있기란 쉽지 않을 테고, 그야말로 남은 건 절망뿐일 것이다. 이 같은 익스트림한 상황에서의 사투를 극사실적으로 그린 영화가 있다. 지난해 많은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 ‘폴 600미터’ 이야기다.
[포스터만 봐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 베키와 그녀의 남편 댄이 위험천만한 절벽을 맨손으로 타고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이 농담을 나누며 클라이밍을 지속하던 중 갑작스레 튀어 나온 새 때문에 댄이 추락해 사망하고, 남편을 잃은 베키는 실의에 빠져 술과 약에 의존하는 폐인이 되고 만다.
그런 베키를 찾아온 친구 헌터는 600m 높이의 송전탑에 함께 올라 댄의 유골을 뿌리자는 제안을 건넨다. 익스트림 등반을 통해 사별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극복하자는 것. 하지만 숨은 의도는 따로 있었다. 헌터는 ‘Danger D’라는 별명으로 6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익스트림 스포츠 여성 인플루언서였고, 곧 철거 예정인 송신탑 B67 타워를 올라가는 콘텐츠를 기획한 것이었다.
그렇게 두 친구는 녹슨 철제 타워를 함께 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올라가는 도중 나사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지지대가 흔들리다 부러지기도 하면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다. 더구나 타워의 대부분은 에펠탑처럼 X자형 지지대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정상을 앞둔 50피트(약 15m) 가량의 구간은 위태롭게 보이는 사다리 한 줄 뿐이었다.
[두 주인공은 600m 송전탑을 맨몸으로 올라간다]
가까스로 정상에 오른 이들은 댄의 유골을 흩뿌리고 몰려드는 감정에 북받친다. 문제는 하강 과정에서 발생했다. 베키가 먼저 내려가던 중 낙후된 사다리가 타워 기둥에서 분리돼 떨어져 나가버린 것. 추락 위기에 처한 베키는 헌터가 다급하게 던진 로프 덕분에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POINT.1 익스트림 스포츠는 모든 과정에서 위험을 수반한다. 언제든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위험에 내몰릴 수 있다. 그래서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이들이 등반한 B67 타워는 철거가 예정돼 있을 정도로 노후화가 심했고, 안전을 담보할 어떤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세계 어느 국가든 이런 건축물을 허가 없이 오르는 것은 당연히 불법. 더구나 이들은 등반 도중 찾아온 여러 차례의 위기 신호를 무시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익스트림 스포츠 관련 사고는 상당수가 이 같은 안전불감증에서 시작된다. 가지 말라는 곳은 어지간하면 가지 말고, 불가피하게 가야하게 된다면 철저한 사전 조사와 준비를 갖추자.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생명줄, 아니 사다리]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상황은 좋지 못했다. 베키는 다리에 상처를 입어 출혈이 발생했고, 휴대했던 물과 드론이 담긴 가방은 50피트 아래 안테나 쪽으로 떨어져 버렸다. 타워 주변은 인적이 없는 허허벌판이었고 고도가 너무 높아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면서 외부에 구조 요청을 할 방법은 전무한 상황.
둘은 고민 끝에 전파가 통하는 지상 쪽으로 스마트폰을 내려 보내는 방안을 구상한다. 헌터는 인스타그램에 SOS 메시지를 포스팅한 뒤 양말과 속옷에 감싼 스마트폰을 신발에 넣어 떨어뜨린다. 성공한다면 6만명의 팔로워들이 반응할 것이란 기대였다. 그러나 낙하한 스마트폰이 살아남지 못했는지 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희망이 사라진 두 사람에게 남은 건 절망 뿐]
POINT.2 익스트림 스포츠에서는 위험에 관한 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빈틈없이 대비해야 한다. 이들은 사람들의 눈과 귀에서 동떨어진 곳을 모험하면서 아무런 대책을 세워놓지 않았다. 사전에 누군가가 이들의 동선과 활동을 인지하고 있도록 조치했어야 하며, 최후의 보루인 스마트폰의 작동 여부를 수시로 확인했어야 한다. 하다못해 스마트폰을 떨어뜨려야 할 상황에서 이들에게 블랙브라이어 제품 같은 튼튼한 가방이 있었더라면 구조 요청 메시지가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다.
결국 헌터는 가방을 가져오기 위해 로프를 타고 안테나로 내려가게 된다. 식수를 확보해 갈증을 해결하고 드론을 날려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간신히 가방을 손에 넣은 헌터는 다시 정상으로 올라오던 도중 추락하고 만다. 댄의 추락사로 인해 트라우마가 있던 베키는 차마 아래를 보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는다.
다행히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베키는 안도한다. 이들은 드론에 쪽지를 부착해 인근 마을로 날려 보내지만, 안타깝게도 지상에 다다른 드론이 지나가던 트럭이 치여 박살이 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어디선가 나타난 독수리들이 피 냄새를 맡고 베키 주변을 맴돈다.
[결국 추락하고 마는 헌터]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영화는 반전을 선사한다. 살아 있었던 줄로만 알았던 헌터는 안테나에 떨어졌을 때 이미 사망했고, 이후의 상황은 트라우마에 휩싸인 베키의 환상이었던 것. 뒤늦게 생존 본능이 극대화된 베키는 헌터의 시신을 완충재 삼아 스마트폰을 넣고 떨어뜨려 구조 신호를 보내고, 이윽고 구조대가 도착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POINT.3 익스트림 스포츠는 신체에 큰 무리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신적 심리적 소모 역시 상당하다. 작중 주인공이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때 극한의 물리적 활동 이면에 숨은 멘탈리티 관리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스크린&스크림]
# 폴 600미터(2022)
지상으로부터 600m 높이의 송전탑 위, 1평 남짓한 공간에 홀로 발을 딛고 서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더구나 태양빛이 뜨겁게 작렬하고 독수리 떼가 위협적으로 주변을 배회하는데 구조를 요청할 방법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면? 제아무리 암벽 등반이나 산악 지형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정신줄을 온전하게 붙들고 있기란 쉽지 않을 테고, 그야말로 남은 건 절망뿐일 것이다. 이 같은 익스트림한 상황에서의 사투를 극사실적으로 그린 영화가 있다. 지난해 많은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 ‘폴 600미터’ 이야기다.
[포스터만 봐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 베키와 그녀의 남편 댄이 위험천만한 절벽을 맨손으로 타고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이 농담을 나누며 클라이밍을 지속하던 중 갑작스레 튀어 나온 새 때문에 댄이 추락해 사망하고, 남편을 잃은 베키는 실의에 빠져 술과 약에 의존하는 폐인이 되고 만다.
그런 베키를 찾아온 친구 헌터는 600m 높이의 송전탑에 함께 올라 댄의 유골을 뿌리자는 제안을 건넨다. 익스트림 등반을 통해 사별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극복하자는 것. 하지만 숨은 의도는 따로 있었다. 헌터는 ‘Danger D’라는 별명으로 6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익스트림 스포츠 여성 인플루언서였고, 곧 철거 예정인 송신탑 B67 타워를 올라가는 콘텐츠를 기획한 것이었다.
그렇게 두 친구는 녹슨 철제 타워를 함께 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올라가는 도중 나사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지지대가 흔들리다 부러지기도 하면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다. 더구나 타워의 대부분은 에펠탑처럼 X자형 지지대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정상을 앞둔 50피트(약 15m) 가량의 구간은 위태롭게 보이는 사다리 한 줄 뿐이었다.
[두 주인공은 600m 송전탑을 맨몸으로 올라간다]
가까스로 정상에 오른 이들은 댄의 유골을 흩뿌리고 몰려드는 감정에 북받친다. 문제는 하강 과정에서 발생했다. 베키가 먼저 내려가던 중 낙후된 사다리가 타워 기둥에서 분리돼 떨어져 나가버린 것. 추락 위기에 처한 베키는 헌터가 다급하게 던진 로프 덕분에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POINT.1 익스트림 스포츠는 모든 과정에서 위험을 수반한다. 언제든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위험에 내몰릴 수 있다. 그래서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이들이 등반한 B67 타워는 철거가 예정돼 있을 정도로 노후화가 심했고, 안전을 담보할 어떤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세계 어느 국가든 이런 건축물을 허가 없이 오르는 것은 당연히 불법. 더구나 이들은 등반 도중 찾아온 여러 차례의 위기 신호를 무시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익스트림 스포츠 관련 사고는 상당수가 이 같은 안전불감증에서 시작된다. 가지 말라는 곳은 어지간하면 가지 말고, 불가피하게 가야하게 된다면 철저한 사전 조사와 준비를 갖추자.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생명줄, 아니 사다리]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상황은 좋지 못했다. 베키는 다리에 상처를 입어 출혈이 발생했고, 휴대했던 물과 드론이 담긴 가방은 50피트 아래 안테나 쪽으로 떨어져 버렸다. 타워 주변은 인적이 없는 허허벌판이었고 고도가 너무 높아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면서 외부에 구조 요청을 할 방법은 전무한 상황.
둘은 고민 끝에 전파가 통하는 지상 쪽으로 스마트폰을 내려 보내는 방안을 구상한다. 헌터는 인스타그램에 SOS 메시지를 포스팅한 뒤 양말과 속옷에 감싼 스마트폰을 신발에 넣어 떨어뜨린다. 성공한다면 6만명의 팔로워들이 반응할 것이란 기대였다. 그러나 낙하한 스마트폰이 살아남지 못했는지 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희망이 사라진 두 사람에게 남은 건 절망 뿐]
POINT.2 익스트림 스포츠에서는 위험에 관한 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빈틈없이 대비해야 한다. 이들은 사람들의 눈과 귀에서 동떨어진 곳을 모험하면서 아무런 대책을 세워놓지 않았다. 사전에 누군가가 이들의 동선과 활동을 인지하고 있도록 조치했어야 하며, 최후의 보루인 스마트폰의 작동 여부를 수시로 확인했어야 한다. 하다못해 스마트폰을 떨어뜨려야 할 상황에서 이들에게 블랙브라이어 제품 같은 튼튼한 가방이 있었더라면 구조 요청 메시지가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다.
결국 헌터는 가방을 가져오기 위해 로프를 타고 안테나로 내려가게 된다. 식수를 확보해 갈증을 해결하고 드론을 날려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간신히 가방을 손에 넣은 헌터는 다시 정상으로 올라오던 도중 추락하고 만다. 댄의 추락사로 인해 트라우마가 있던 베키는 차마 아래를 보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는다.
다행히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베키는 안도한다. 이들은 드론에 쪽지를 부착해 인근 마을로 날려 보내지만, 안타깝게도 지상에 다다른 드론이 지나가던 트럭이 치여 박살이 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어디선가 나타난 독수리들이 피 냄새를 맡고 베키 주변을 맴돈다.
[결국 추락하고 마는 헌터]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영화는 반전을 선사한다. 살아 있었던 줄로만 알았던 헌터는 안테나에 떨어졌을 때 이미 사망했고, 이후의 상황은 트라우마에 휩싸인 베키의 환상이었던 것. 뒤늦게 생존 본능이 극대화된 베키는 헌터의 시신을 완충재 삼아 스마트폰을 넣고 떨어뜨려 구조 신호를 보내고, 이윽고 구조대가 도착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POINT.3 익스트림 스포츠는 신체에 큰 무리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신적 심리적 소모 역시 상당하다. 작중 주인공이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때 극한의 물리적 활동 이면에 숨은 멘탈리티 관리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